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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로마 제국/정체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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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= 슬라브권의 인식 ==== 한편 [[정교회]] 신앙과 [[키릴 문자]] 등 동로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남슬라브족과 동슬라브족 역시 동로마를 로마라고 불렀다. 우선 불가리아의 경우 [[불가리아 제1제국]]의 전성기를 연 [[시메온 대제]]가 913년 로마 황제 [[콘스탄티노스 7세]]의 섭정단 대표를 맡고 있던 [[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]] 니콜라오스 1세로부터 '모든 불가르인과 로마인의 황제이자 군주(Car i samodǎržec na vsički bǎlgari i gǎrci)' 칭호를 받았다. 비록 로마 당국은 세계총대주교의 독단이었음을 주장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메온은 로마와의 전쟁 기간 내내 로마인의 황제 칭호를 사용하면서 동로마의 신경을 거슬렀으며 결국 924년 [[로마노스 1세]]와 화평을 맺으면서 '불가르인의 황제'라는 칭호로 합의를 보았다. 1205년 아드리아노플에서 [[4차 십자군]]으로 인해 세워진 [[라틴 제국]]을 격파하고 라틴 황제 [[보두앵 1세]]를 잡아죽인 [[불가리아 제2제국]]의 차르 칼로얀의 경우 이후 [[마케도니아]]와 [[트라키아]] 일대에서 동로마인들을 학살하고 다니며 과거 동로마 황제 [[바실리오스 2세]]가 '불가록토노스(Boulgaroktonos, 불가르인 학살자)'라는 별명을 얻은 데 따른 보복으로 스스로를 '로마녹토노스(Romanoktonos, 로마인 학살자)'라고 일컫기도 했다. 또한 14세기 초 동로마 제국이 쇠하고 불가리아 제2제국이 강성해지자 당시 불가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수도 [[벨리코 터르노보]]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불가리아어 명칭인 '차리그라트(Цариград)'에서 따온 '황성 터르노보(Tsarevgrad Tarnov)'라고 부르며 [[제3의 로마]]를 자칭하기도 했다. 세르비아의 경우 [[팔레올로고스 왕조]] 시기 제국 내에서 잇달아 내전이 터지자 기회를 틈타 발칸 반도에서 동로마군을 잇따라 격파한 [[스테판 우로슈 4세 두샨]]은 동로마의 서부 영토 일부를 점령한 여세를 몰아 1346년 스스로 '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황제'[* 세르비아어로는 'Цар Срба и Ромеја', 그리스어로는 'βασιλεὺς καὶ αὐτοκράτωρ Σερβίας καὶ Ῥωμανίας'로 표기되었다. 세르비아어 명칭으로 '세르비아인과 그리스인의 황제(Цар Срба и Грка, Emperor of the Serbs and Greeks)'라고 불리기도 했다.(참고로 'Emperor of the Serbs' 문서의 세르비아어 위키백과 타이틀은 'Цар Срба и Ромеја'로 되어 있다) 그리고 서방 세력을 상대로 한 라틴어 명칭으로는 'I(m)p(erator) Roma(niae)(Emperor of Romania)' 또는 'I(m)p(erator) Ro(ma)io(ru)m(Emperor of the Romans)'을 사용함으로써 서유럽 국가들을 상대로도 자신이 '로마인의 황제' 자리에 올랐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였다.] 자리에 등극해 로마 황제를 자칭함으로써 [[세르비아 제국]]의 문을 열었다. 그리고 [[러시아]]의 경우,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[[모스크바 대공국]]이 같은 정교회 신앙과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처럼 7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였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들의 수도 [[모스크바]]를 본격적으로 제3의 로마로 자칭하기 시작했다. [[러시아 정교회]]의 수장인 모스크바 총대주교 조시무스는 모스크바 대공 [[이반 3세]]에게 '새로운 콘스탄티노폴리스인 모스크바의 새로운 황제 콘스탄티누스' 칭호를 바쳤으며 [[이반 3세]] 역시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 [[콘스탄티노스 11세]]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후 로마 황제와의 혈연관계임을 주장하며 스스로를 [[차르]]로 칭했다. 모스크바 대공국의 [[제3의 로마]] 주장은 1510년 [[프스코프]]의 수도원장 필로페이가 [[바실리 3세]]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난다. > два убо Рима падоша, а третий стоит, а четвертому не быти. > 두 로마는 무너졌지만 세 번째 로마는 굳건히 버티고 있으며, 네 번째 로마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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